■ 가발의 역사
1. 서양의 가발의 유래
서양에서는 B.C 30세기경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가발이 사용되었으며 장식은 물론 머리를 햇볕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위해 중류층은 짧은 가발(모직으로 만든)을 썼고, 부유층은 진짜 모발로 만든 가발을 착용하여 외관상의 신분을 결정하였다. 가발은 검정색이 많고 때로는 진한 청색 또는 황금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B.C12세기경에는 헤나염료나 인디고 등으로 빨강, 파랑, 노랑 등 여러 가지 빛깔로 염색하였다.
1) 고대 이집트
2) 고대 로마
3) 17 세기
17세기 여자들은 가발을 사용해서 머리를 높게 빗어 올려 보석과 아름다운 핀으로 장식하였다. 17세기에는 헤어패드의 시조인 작은 쿠션을 모발에 넣어 대형 헤어스타일을 만들기도 했으며 여성의 머리모양이 높으면 높을수록 관심을 집중시켜다. 귀부인들은 머리를 높게 하기위해 풀기를 넣은 포마드로 머리를 고정시켰다. 또 인위적인 가발도 등장하였고 남자들도 사용하였으며 프랑스 궁전에서도 가발 쓰는 것이 유행하였고 프랑스 궁전 내에 200여명의 가발장이도 수용하였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는 유럽전체에 보급되었다.
4) 18 ~ 19세기
18세기 때에는 나이, 직업, 의복에 따라 또는 신분표시용으로 사용되었다.
5) 20 세기
오늘날의 가발은 프랑스에서 유래되었으며 인조가발의 개발로 더욱 용도가 다양해졌으며 많은 스타일이 표현되고 있고 자신의 모발처럼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가발은 역사적으로 볼 때 미를 창조하였고 신분과 계급을 나타냈으며 더 나아가서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 왔으며 20시기에 들어서면서 유전적인 탈모 및 정신적, 자연적인 탈모의 증가로 가발의 이용도는 날로 증가하면서 장신구 대용품으로써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리적인 위안으로 사회발전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2. 우리나라의 가발 유래
1) 다래, 가체
우리나라는 머리숱이 적은 여인들이 다래, 가체를 달아 쪽을 진 것이 가발의 시초이다. 옛 사람들은 머리모양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 다래를 사용하였고 현대 여성들의 가발사용은 멋을 내기 위해서나 탈모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측면에서 볼 때 미용적 측면은 같다고 보아진다.
2) 한국 가발사
5.16군사정권이후 1962 ~ 1963년경에 수출장려 정책에 부응하여 가발시장을 장악하였다. 지금도 40년간은 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가발하면 “Made korea”로써 세계정상을 달리고 있다. 1960년대 초 가발은 이 나라 수출 10억불 진입까지 섬유, 합판과 함께 기여한 공로는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세계 가발시장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가발은 서양의 경우 오랜 세월동안 백인의 전유물 이였다.
70년대 중엽에 한국의 가발산업이 한때 휘청하여 그 당시 백인 가발시장의 가발붐이 퇴조되어 가발업 전체가 침체되었을 때 마케팅 전략이 흑인에게로 맞춰졌다. 흑인의 모발구조 및 형태상으로 볼 때 적중했으며 오늘의 발전을 갖고 온 계기가 된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인조가발(원사)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후속적으로 보다 저렴한 원사들이 개발, 출원되었고 지속적인 공정이 개선되었다.
기술 개발, 스타일 개발, 생산성 향상 등으로 백인시장도 커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체 가발뿐 아니라 흑인 머리에 맞는 부분 가발, 부착과 연장이 가능한 헤어피스 쪽을 적극 개발하여 흑인 시장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것이다. 1960년대 중반이후 기계제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1960년대 후반에 인조머리가(Synthetic Fiber)가 출현하여 일본, 미국, 이태리에서 이 원사들이 계속 개발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일본원사를 사용하고 있고 품질이 우수하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원사가 개발되어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전체가발의 캡도 전체 망으로 된 제품에서 통풍성이 좋고 보다 가벼워진 부분으로의 대 변화가 되었고 앞부분이나 정수리부분 또는 가르마부분에 인조두피(Skin)에 식모하는 공법으로 소위 가발에 인조두피시대를 열었고 팬시칼라 및 다양한 특수칼라와 다양한 콤비네이션 칼라가 개발되었다.